하늘은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도 그다지 무심치 않았습니다. 다만 무심했던 것은 윗선일 뿐입니다.
대선이 1달 앞으로 훌쩍 다가오면서 약간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세월호 1000일을 앞둔 그 시점부터 조금씩, 세월호가 다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침몰원인에 대해 입을 연 선원도 나타납니다. 왜 하선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지가 재조명받습니다.
인양하는 날 하늘에는 노란 리본이 떴습니다. 마치 인양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끝까지 하라는 듯 날씨도 한동안 잠잠했습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전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 날 하루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하기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날만은 다른 날에 비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관저에 머물던 분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 건 아닙니다. 마치 변명같지만 그렇습니다.
그 날 기분이 묘했다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기분이 묘했던건 작년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 밤이었습니다.
다만 수학학원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참사 당일 아침에 북한산에 올라가서 소식을 못 들었는데 안개가 너무 뿌옜다며, 내려오고 배 사고 소식을 듣고도 딴 나라 이야기인줄 알 정도로 비현실적인 참사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배가 침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막 사회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갖던 초등학교 3학년때 일어난 천안함 폭침 사건보다도 충격을 먹고 학교를 갔던 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 반 급우들은 세월호에 탄 사람들이 구조되고 있는지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조차도 세월호를 생각했습니다. 전원 구조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정정보도에 속으로 욕하고,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에어포켓에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녁에 JTBC뉴스를 봤습니다.
그날 아침, 점심, 저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나 제가 감수성이 예민한지라 포켓몬에서 지우가 사라지는 장면에서도 혼자 우는 애였는데, 그래서인지 세월호에 친구,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차마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날 밤 울었던것도 같네요.
그 해 이후 4월 중순만 되면 어디가 아픕니다. 1주기때는 38도까지 열이 오른지도 모른체 학교에 등교했고 그 다음날 알아차렸습니다. 2주기때는 약 1주일간 멈추지 않는 두통으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올해는 장염에 걸려서 질병지각을 해버렸네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인줄 알았는데 다른 시험때는 그런 게 없는 걸 보면 세월호가 저한테도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입니다.
그런 세월호 참사를 두고 더이상 보기 싫다며 지겨워하시는 분들을 보면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론 슬픕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아픈 기억, 트라우마로 남아도 모자랄 일이기에, 그 아픈 모습 다시 보는 건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래서 지겹다는 핑계로 둘러대며 애써 외면하시는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기억을 자꾸 외면해서 이렇게 3년이 흘러서야 나온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세월호 가족분들에게 두 번, 아니 여러번 상처를 내시니 그건 사람으로써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건 마치 아픈 환자한테 막말하는 것과 다름 없고 아픈 환자 죽으라고 칼 꽂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걸 아실 만한 나이드신 분이,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정말로 화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물론 나이드신 분들만 그러는 것은 아니나 나이드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갖추지 말아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더 이상 길게 쓰면 넋두리가 될 것 같고 자칫하다간 욕도 먹을 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주 한 주 동안은 시험대비 관계로 블로그를 쉽니다. 그런 와중에도 댓글이나 트위터 멘션은 받고 있으니 연락하실 분은 주저없이 해주십시오.
그럼, 4월 27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