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넥서스 5X를 내려놓으며.

2015년 11월 15일 넥서스 5X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4년하고도 1개월 남짓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중 메인보드 불량으로 인한 무한 재부팅 현상때문에 LG G3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2개월을 제외하고 고등학교 학창생활 전부와 중학교 3학년을 모두 넥서스 5X와 함께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 쓴 정든 휴대폰이기도 합니다.

선택지가 없었던 첫만남

당시 제가 고를 수 있는 스마트폰은 갤럭시 A5 2015, 갤럭시 A7 2015 및 LG X 시리즈가 전부였습니다. 삼성 휴대폰은 중급형 기기에 제대로 센서를 탑재하기 시작한 시점이 2016년형 모델부터여서 앱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저에겐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X 시리즈를 고르자니 LG의 사후지원은 지금보다도 더 불안해,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넥서스 5X는 없나요?"
마침 LG전자에서 넥서스 5X를 제때 출시해준 덕분에, 제품 박스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넥서스나 픽셀 시리즈는 일부 사용자에게만 유명한 제품이어서 전국의 KT망 넥서스5X 가입자가 10000명도 되지 않는 시점이었습니다.

32GB에 흰 색상. 전에 쓰던 옵티머스 뷰2와 비교했을때 2배 늘어난 저장소와 향상된 AP 성능, 지문인식을 제외하고는 체감하기 어려웠습니다. 2GB 램, 2700mAh 배터리 용량 등 뷰2와 출시 시기가 2년 이상 차이나는데도 불구, 당시 넥서스의 사양은 동시기 타 제품 대비 가격이 저렴한 만큼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OS 업그레이드 하나는 가장 잘 지원해주는 제품이었고, 후면 카메라나 센서도 충분히 플래그쉽에 걸맞게 탑재되어 있어 원했던 바에 가장 가까운 스마트폰이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누가

메인보드가 고장나버리면 사람들은 '벽돌'이 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초 탑재된 말랑말랑한 마쉬멜로우 운영체제에서보다 딱딱한 누가 운영체제에서 불량이 많이 발생하여 한때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스냅드래곤 808 및 810 모델의 발열량이 매우 높아 기판에 지속적으로 무리를 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묘하게 시기가 맞아 떨어져서 누가 OS가 원인으로 주목되기도 했었죠.
제 휴대폰도 통상적인 무한 재부팅 발생 시기인 1년보다는 오래 버텼지만, 같은 넥서스 5X 아니랄까봐 2017년 2월 어느날 Minecraft : Pocket Edition을 하던 중 무한 재부팅이 발생해 잠시 작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잠시동안 만난 휴대폰은 LG G3 기본 모델로, 스냅드래곤 801과 3GB 램을 탑재하고 넥서스 5X와 달리 microSDXC 확장을 지원하는 제품이었습니다. 나노 유심이 아닌 뷰2와 같은 방식, 마이크로 유심이어서 유심 핀 위치를 맞추는 것이 어려울 것을 우려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주 쉽게 장착이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순정 UX에 적응했던 것때문에 지난 2년을 사용했던 LG UX에도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2GB 램과 3GB 램은 기본적으로 가용 용량이 달러서인지, 잠시나마 쾌적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넥서스 5X, 하얀 오레오를 먹다

메인보드 수리를 받고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Android O의 공식적인 코드네임이 오레오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둥근 모서리를 가진 새하얀 픽셀 2와 함께, UI도 전반적으로 과거의 Material UI보다 하얀색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넥서스 5X도 업그레이드 대상이어서 다소 어설프지만 하얀색 패널과 OLED용으로 당초 추가된 네비게이션 바 흐리기 기능, 둥근 모서리를 탑재한 화면을 위한 시계 위치 변경을 동일하게 적용받았습니다.
내부 UX도 하양, 외장도 하양.
이때만큼 휴대폰 색상과 UX가 유사했던 적도 없어서 한편으로는 바뀐 부분을 찾으며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일군 마지막 2년

지난 2018년 1월에는 중대한 보안 사고가 터졌습니다. 인텔 CPU의 사실상 전제품과 퀄컴 스냅드래곤 808 / 810 등의 제품에 해당하는 멜트다운 및 스펙터 취약점이 발견된 겁니다. 그나마 넥서스 5X에게는 1년의 보안 패치 기간이 남아있어서 파이 업그레이드는 1회 OS 업그레이드가 연장된 픽셀 1 기종과 달리 받지 못했지만 2018년 2월 부로 금방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2012년 2GB 램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한 이래 무려 7년동안 같은 크기의 램으로 저와 같은 사용자가 제대로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32GB 저장공간도 마찬가지여서 다이어트를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해주어야 살 만 했습니다. 특히 자동으로 생성되는 4GB 크기의 썸네일과, 브라우저 동기화 데이터는 저를 상당히 괴롭혔습니다. 결국 Chrome의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지우고, 데스크톱에서 주로 사용하는 Firefox만 동기화를 사용하기로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캐시 파일이 쌓이지는 않았을까 수시로 SDMaid 도구로 캐시를 정리하고, 사진을 찍는 즉시 모두 구글 포토에 올린 후 삭제하는 방식으로도 사용했습니다. 구글 포토에 올리기 전에 용량이 다 찰 것 같으면 Open Camera 앱을 사용해서 OTG USB를 저장소로 활용하며 동영상을 찍곤 했었죠.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1GB 남겨두면 많이 남겨둔 상황인 제 휴대폰에 4GB에 달하는 데이터를 요구하는 게임을 설치할 방법이 없더군요. microSD 슬롯이라도 있으면 Adaptive Storage라도 쓸텐데, 자주 연결을 해제할 OTG USB를 Adative Storage로 만들었다간 폰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으니 감히 쓸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게임은 선택이니까 괜찮지만, 요 몇 년 사이 앱이 급격하게 무거워지면서 때로는 은행 앱 하나와 백신 앱 하나만으로도 램이 가득차 은행 앱 구동 도중에 갑자기 백신 앱이 죽어서 휴대폰에서 금융 업무를 보기 힘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음악을 들으며 웹 브라우징을 할 수도 없었고, 단순히 포켓몬 고를 실행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국민은행 계열 앱의 경우, 지문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KB스마트원인증 앱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문 로그인을 눌러 KB스마트원인증 앱이 열렸고 지문인식까지 했는데 돌아오니 그 앱이 죽어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이러니 당연히 웹 기반의 앱에서 간편결제를 실행하려고 시도하면 정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결제 시도만 5번 하다가 포기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돈은 빠져나갔는데 결제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아 다시 환불처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4년을 넘기고 나니, 휴대폰이 이제는 보내달라는 신호인지 발열도 강해지고 전에 되던 것도 잘 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휴대폰 교체 예정이어서, 휴대폰 교체 전전날 전화 수신이 제대로 안 되는 전화기가 된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감정을 간직한 채 실사용 폰에서 해방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넥서스 5X, 앞으로도 잘 부탁해.

비록 앱도 많고 설정해둔 것도 많아서 아직 초기화도 못했지만, 넥서스 5X는 당분간 다양한 용도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잘 버리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카메라는 아직도 쓸만하고, 커스텀롬의 길이 폭 넓게 열려있으니까요. 램이 다소 부족하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개발용 기기로서 함께할 예정입니다.

넥서스 5X,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넥서스 5X로 촬영한 새 휴대폰 LG G8 ThinQ 뉴 모로칸 블루 모델.